"이건 약한 자를 지켜주라고 주는 거다"


"이건 약한 자를 지켜주라고 주는 거다"

중학생 때 운동을 배웠습니다. 그때 관장님께서 검정띠를 주시면서 하신 말인데요. 관장님은 늘 "미성숙한 아이들은 운동을 배우고나면 자신이 힘을 가졌다고 생각하고 애먼 아이들을 때린다"며 걱정하셨습니다. 그래서 관장님은 내게 검정띠를 주시면서 "힘자랑하지 말아라"며 신신당부를 하셨더랬죠. 저 역시 검정띠를 처음 받았을 때는 그러겠다고 생각했지만, 유단자가 된지 며칠 지나지 않아 그 다짐은 간데없고, 아이들을 괴롭혔던 기억이 납니다.

 

처음에는 그저 검정띠를 자랑하기 위해 친구들을 툭툭 건드렸습니다. 흰띠에서 시작해서 노란띠, 파란띠, 빨간띠를 거쳐 검정띠를 땄다는 사실. 그것을 갖기 위해 내가 많은 노력을 했고, 결국에는 띠의 최고인 검정띠를 획득했다는 사실을 자랑하려고 아이들을 건든 것 뿐이었는데, 이것이 언젠가부터 일종의 우월감으로 변질되었습니다. 힘없는 아이들을 지켜주겠다는 생각은커녕 다른 아이들을 우습게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 힘든 단계를 거치지 않은 너희들과 달리 나는 노력을 해서 검정띠를 얻었다는 생각. 그래서 그들과 달리 나는 힘을 가졌다는 생각 때문에 아이들을 괴롭혔던 것 같습니다.  또, '힘자랑'을 하는 내게 음료수를 건네는 등 아이들의 대접도 나쁘지 않았고요. 이런저런 이유로 미성숙한 아이의 치기어린 행동은 한동안 계속되었습니다.

 

이처럼 일정한 단계를 거쳐 그것을 얻게 되면, 힘들게 얻은 과정에 대한 보상심리가 하나의 우월감으로 작용합니다. 분명 시작은 자기 스스로 세운 목표임에도 불구하고, 한단계 한단계를 거칠 때마다 자신이 어떤 힘을 가졌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정의감이나 사명감에 불타던 초심은 오간데 없죠.  이는 비단 어린 저의 모습 뿐만이 아닙니다. 예컨대, 일명 "각종 '사'자 들어가는 직업"을 얻은 사람들을 볼까요. 그 직업을 얻기 위해 여러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그 과정을 거쳐 최종목표에 다다른 사람에게는 권력이 부여됩니다. 남들이 거치지 않은 어려운 과정을 통과했다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사회에서 힘을 가집니다. 그들이 받는 대접은 내가 어릴 때 친구들을 때리며 받았던 음료수, 그 이상이겠죠.

 

요즘 한참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스폰서 검사 사건도 이와 무관하지 않아 보입니다. 자신이 가진 힘을 이용해 사람들을 괴롭히고 접대를 받는 현상. 그것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모습. 그들을 보고 있자니 어릴 때의 제 모습이 생각납니다. 그때의 저는 미성숙한 아이여서 그랬다 하지만, 사회를 이끌어나가는 위치에 놓인 그들이 제가 어릴 때 하던 생각과 행동을 답습하는 걸 보고 있자니, 요샛말로 손발이 오그라듭니다.

궁금해지네요. 검찰배지를 처음 받았을 때 어떤 이야기를 들었을지, 또 어떤 다짐을 했을지.

문득, 제가 검정띠를 받았을 때 관장님이 하신 말이 생각납니다.  

"이건 약한 자를 지켜주라고 주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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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순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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