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삼순이 맞아?

감자의 꿈, 최문순의 이력6>

 

 

 

삼순이 맞아?

갑자기 방송사 사장이 되면서 ‘쓰나미’라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노조위원장 출신이 사장이 됐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선진국에서는 일반화된 과정입니다.)

저 자신도 사장직이 참으로 어색하고 몸에 맞지 않았습니다.

사장직을 수행하면서 가장 역점을 둔 것은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 ‘방송을 권력으로부터 완전히 독립시키고’,

둘째 ‘방송도 권력의 자리에서 내려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번째 과제는 달성했다고 자부합니다.

당시 노무현 정권으로부터

인사권, 편집·편성권에 대해 전혀 간섭받지 않았습니다.

권위주의 정권 시절의 대통령과 방송사 사장들은

언제나 서로 통화하며 인사와 편집 방향에 대해 상의해왔습니다.

노 대통령은 저에게 인사권, 편집·편성권에

어떤 형태로든 단 한 차례도 간섭하지 않았습니다.

저도 대통령으로부터 그 어떤 도움도 받지 않았습니다.

(물론 인간 세상이니만큼 주변적인 인물들로부터

사소한 청탁 전화가 오지 않은 것은 아니나 관철된 바는 없습니다.

오히려 어떤 이에게는 ‘대통령에게 이르겠다’고 협박했습니다.

그러면 얼른 전화를 끊습니다.)

두 번째 목표였던 ‘방송 스스로 권력의 자리에서 내려와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

달성이 됐는지에 대해 자신이 없습니다.

그러나 재직 중 끊임없이 ‘몸에 밴 오만함을 버려야 한다’는 점과

‘관계의 역전·겸손함’을 강조했습니다.

다음 경제적으로 지상파 방송사들이 이미 진입해 있던

저투자·저성장·저분배의 악순환 고리를 끊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고투자·고성장·고분배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저는 이 구조를 ‘많이 벌어서 많이 쓴다’,

또는 ‘많이 써서 많이 나눈다’로 요약해서 사원들과 공유했습니다.

경영 수치상으로는 어느 정도는 성공했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삼순이’라는 애칭으로 불러주신 분들이 있습니다.



재임 중 평양 동평양대극장에서 뉴욕 필 오케스트라가 공연을 했습니다.

역사적인 사건이었습니다.

한국 전쟁이 끝난 뒤 처음으로 미국의 성조기가 평양에 게양됐습니다.

역시 역사상 처음으로 미국 국가가 평양에서 연주됐습니다.

뉴욕 필은 평양시민들 앞에서 <아리랑>을 연주했습니다.

연주가 끝난 뒤 현장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 장면은 MBC를 통해 전 세계에 생중계됐습니다.

 생방송이 없는 평양에서도 생방송됐습니다.

가장 어려운 일이었고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이었습니다.



힘든 일도 많았습니다.

황우석 사태 때는 죽다 살아났습니다.

저는 물론이고 80세 노모, 처갓집 식구들까지

문밖을 나가지 못할 정도였으니까요.

돈벌이에도 힘을 많이 썼습니다.

방송의 독립성을 유지하려면 돈이 많이 있어야 했습니다.

노조 위원장 출신이 돈벌이에 눈이 멀었다는 비판도 많이 받았습니다.

- 최문순의 ‘감자의 꿈’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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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순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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